2023. 12. 22. 04:27 일상

주어진 것 속에 얼마나 많은 특권이 있는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알아차리기 힘들다. 이것은 비단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적과 연령, 성별과 신체조건, 나아가 '평범함' 자체도 힘을 지닌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획득한 탓에 그렇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어렵지만, 그 무지로 인한 결과는 생각보다 크다. 누군가가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특정 집단이 구분되고 배제되며 그로써 누군가의 이익이 극대화 되는 것. 그것은 특권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무지는 면죄부가 될 수 없고 무지를 무죄와 연결시키는 논리는 구차함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 고유의 한계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무지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무지의 영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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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elvet_ica
2023. 8. 7. 01:49 일상

견디고 버텨서 지나 온 시간들이 있다. 왜 견뎌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버틸 수 있는 지 고민해 보아도 정답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즈음의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와 허무 사이를 항상 오갔지만, 그렇대도 어쩔 도리가 없어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극적 반전 같아 보이는 일들이 몇 번쯤 일어났지만 평균적으로 여전히 견뎌야 할 것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견뎌서 다행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을 간혹 만난다. 끝없이 평안해서 내가 어떻게 이 순간에 닿을 수 있었을까 경이로워 지는 순간들. 그 순간을 만나면, 치이고 버텼던 시간들은 지금으로 오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고 그렇게 만난 오늘에 과거는 위안을 얻는다. 모두 '오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나는 하나도 뒤틀리거나 잘못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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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4. 00:07 FESTIVAL

적당히 보고 3~4시쯤 나와야지 했지만 재미 들려서 10~20시 운영시간 꽉 채워서 보고 왔다. 피부에 디스플레이가 직접 닿지 않도록 눈가에만 덧대는 헝겊을 주는데 너무 오래 썼더니 얼굴에 헝겊 자국이... ㅜ 대기 시간마다 얼굴 가리고 다니기 바빴다.

1. JFK Memento (미국, 프랑스 | 2023 | 17m | 3DoF)
케네디 암살 사건 발생 당시의 수사과정을 다큐 형식으로 담았다. 우연히 현장을 촬영한 주민, 당시 사건을 맡은 형사의 인터뷰를 따라 영상을 보여주는데 이미지 구성 방식이 재미져서 흥미진진. (아니 왜 궁금한 포인트에서 이야기 딱 끊어.. 2편은 23년 11월 오픈한다고.) 영상은 관객을 그날 사건이 일어난 공간 한 복판에 세워둔다. 360도로 구현한 공간 위에 당시 사진들을 중첩하는데(대통령 내외의 차량 행진, 범인이 머물던 창고를 살펴 보고 숨겨둔 무기를 발견하는 현장 사진) 덕분에 마치 내가 60년 전 과거 그 공간에서 군중, 경찰과 함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장감 최고. VR 추적 다큐는 이런 방식이 가능하구나~ 싶었다. '메타'에서 펀딩한 작품.

2. From the Main Square (독일 | 2022 | 19m | 6DoF)
처음엔 그냥 아기자기 이쁜 일러스트가 움직이는 영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광장에 서있고 광장을 둘러싼 언덕에 사람들이 평화롭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 오밀조밀 보는 맛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군대가 밀고 들어와 마을을 휘젓기 시작한다. 사람들을 가두고 검문하는가 하면(폭행과 추행이 뒤따른다) 탱크를 막아서는 사람을 짓밟아 버리기도 한다. 각종 동물들을 헬기에 실어 와 동물원에 가둔다. 자살하는 사람이 생긴다. 군대에 대항하는 무리가 생기고 다툼이 지속되다 건물 하나가 터져 세상이 멸망하듯 어둠 속으로 빠진다. 이걸 VR로 보고 있자니 소름이 내내 돋았다. 비극으로 끝나는 역사책을 본 느낌. 계속 생각난다. (작가 인스타 @dani.eizirik / 2022 베니스)

3. Eggscape (아르헨티나 | 2022 | 20m | AR)
증강현실 게임 처음해 보는데 이거! 너무 재밌어! 한 번 더 해보고 올 걸 ㅜ 혹시 다운받을 수 있나 싶어 찾아보는데 눈에 안띈다. 처음엔 그냥 캐릭터를 움직여 먹을 거 먹고 적 물리치는 수더분한 느낌이었는데, 공간이 계속 변하니 오밀조밀 보는 재미가 생겼다. 진짜 재밌었던 때는 공간을 크게 쓰는 단계에 왔을 때. 캐릭터를 천장까지 날아 올려 코인을 먹는가 하면(허우적 대면서 컨트롤러 조작하는 모습을 영화제 공식 기자단 같은 분이 엄청 사진 찍어갔다), 멀리서 거대한 로봇의 공격을 피해 미사일을 날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얼마나 허우적거렸을까. 하지만 재밌으면 장땡. 아.. 다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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